원근이라는 것은 대상이나 사물이 그것을 바라보는 나에게서 가깝고 멀어지는 정도에 따라 다양한 크기, 형태변화들을 가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원근, 원근법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어느위치에서 대상을 보든 실제의 형태에 가깝게 표현할 수 있도록 그 형태변화, 크기변화를 이해하는데 있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술사(美術史)적으로 봤을 때 이러한 의미의 원근은 르네상스시대 이후부터 발달을 하기 시작하는데요.

이는 그 이전 사람들이 이 원근이라는 것을 지각(知覺)하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물론 지각하지 못했다는 것이 바른 해석일 수도 있지만 못해서라기 보다는 안했다는 것이 정확한것이겠죠.

르네상스 이전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사실보다 자신의 믿음...다시말해 신념을 중요시 했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보다는 상징적인 것에 의미를 크게 둔것이죠.



                                <네바문의 정원> 기원전 1400년경 티베의 고분벽화                       <헤지레의 초상> 기원전 2778~2723년경




위 이미지에서 <네바문의 정원>을 보게 되면 연못은 위에서 내려다본 형태로 표현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연못 주위의 나무라든지 연못안에 있는 물고기나 새는 측면에서 봤을 때의 형태로 표현이 되어있습니다.

이것은 저희가 어떠한 대상을 봤을 때 그 대상을 쉽게 인식할 수 있는 시점에서의 형태들이라는 것입니다.

오른쪽 <헤지레의 초상> 을 보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눈은 정면에서 바라봤을 때의 형태로...

얼굴은 측면에서 바라봤을 때의 형태, 몸은 정면, 팔과 다리는 측면에서 바라봤을 때의 형태로 표현되어있습니다. 몸전체를 자연스러운 모습이 아닌 시점을 초월한 형태... 정확하게 그 부분임을 나타낼 수 있고 그 부분임을 인식할 수 있는 형태들로만 표현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즉 나에게 어떻게 보여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실제처럼 느껴지는 지는 중요하지 않죠.

중요한 것은 표현된 것이 그 스스로 완전함을 가질 수 있는 형태들... 상징적인 형태들이어야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었죠.


이는 이집트의 종교적인관점, 신앙적인 부분으로 인해 사후세계에서 완전하기를 원했던 이집트인들의 믿음에 따른 해석, 표현의 결과물이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르네상스 이전에 세계관(?)에서는 굳이 원근, 원근법을 이용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문명의 흐름이 이집트에서 그리스, 오리엔드쪽으로 넘어오면서 이런 생각들은 조금씩 바뀌기 시작합니다. 더 사실적으로 현실감있게 표현하는 것을 원했고 노력하게 된 것이죠.


물론 수학적으로 정확한 비례관계에 따른 원근법이 적용된 것은 아니지만 상징적으로 그려지던 그림에서

상당한 발전을 이루었다고는 할 수 있습니다.



BC 3세기~ BC 1세기 폼페이벽화



위 그림들은 BC 3세기에서  BC 1세기전,후로 그리스 로마... 즉 헬레니즘 문화가 번성했던 시기에 그림들입니다. 이전에 상징적이던 그림에서 조금 더 사실적으로 현실감있게 그림을 그리려했던 노력들을 찾아 볼수 있습니다. 특히 오른쪽에 위치하는 그림에서 나타나는 인물들과 뒤쪽 건물들 사이의 공간감, 배와 건물, 그리고 인물의 크기관계와 같은 부분들을 생각하면 상징적이던 그림들이 원근적으로 그리고 형태적으로 조금 더 실제에 가까워졌다라는 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런 형태표현의 발전과 노력은 로마가 붕괴되고 중세시대를 거치면서 상당한 침체기를 겪게 되기는 합니다. 사실적인 표현에 대한 열망은 로마의 국교(國敎)가 크리스트교가 되므로써 자연스럽게 종교에 의한 억압을 받게 되고 그로인해 그 이전까지 이어져내려오던 상징적인 의미에 중점을 두었던 표현들로 회귀(回歸)하게 되는 것이죠.


                        <수태고지> 스바비아 필사본 1150년경            <사도들의 발을 씻기는 그리스도>, 1000년경, 오토3세의 복음서



물론 로마의 붕괴 이후 중세시대에서도 나름 찬란한 문화의 발달은 있었습니다.

건축양식으로 대두되는 비잔틴, 로마네스크, 고딕양식이 그 대표적인 것이며, 스테인드글라스기법이나 모자이크가 크게 발달한 때가 바로 이 시기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원근적인... 즉 사실적인 형태표현이라는 부분만을 놓고 본다면 전혀 발전하지 못하고 오히려 퇴보하게 된 시기가 바로 후기 후기로마와 중세시대라는 것입니다.

아무튼 형태표현에 있어 침체기와 퇴보는 그후 14세기까지 계속되다가 엣날에 찬란했던 그리스와 로마...즉 헬레니즘 문화양식의 부활을 바랐던 이탈리아인들에 의해서 르네상스가 생겨나면서 퇴보와 침체는 그 전환점을 맞게 됩니다.


그 이전까지 종교와 봉건제도로인해 개인의 창조성이 억압받던 시대가 무너지고 귀족과 기사사 몰락하는 한편 지리적인 이점으로 무역과 상업을 하던 상인들, 자유민의 지위가 높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시민문화가 형성되고 시대적 상황으로 인문주위가 대두되면서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창작물들이 존중받는 시대가 된것입니다.


따라서 그로인해 사회 전반적으로 많은 분야들이 이러한 인문주의적인 영향을 받았지만

특히 미술에서 그 영향력이 크게 나타났다라고 할 수 있는 것이죠.

어떠한 제재나 억압없이 표현활동을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자연을... 세부적으로는 인물들까지 조금 더 사실적으로 그리고 조금 더 정확하게 표현하려는 탐구와 노력을 하게되었고 여기서 저희가 그토록 바라기를 마지않던 원근법이라는 것이 생겨난 것이죠.

가장 먼저 이런 수학적인 관점으로 원근법칙을 이해하고 만들어낸 사람은 

필로포 브루넬레스키 라는 건축가였습니다.

브루넬레스키는 물체가 자신에게서 멀어질 수록 수학적인 법칙에 따라 일정하게 작아지며, 끝내는 저멀리 지평선 위에 하나의 점으로 사라진다는 것을 알게 된것이죠. 그렇게 알게된 법칙을 브루넬레스키는 마사초의 <성 삼위일체>라는 그림에 화면구성으로 쓰일 수 있게끔 합니다.



 

<성 삼위 일체> 마사초 1425-1428년경



과연 당시 사람들이 이 그림을 보면서 뭐라 했을까요?

쭉 빨려들어가는 원근감에 마치 마법에라도 걸린냥 그림앞에서 멍하니 서있지 않았을 까요??

아무튼 이 그림을 시작으로 원근법은 회화에 적극적으로 도입되게 됩니다.


파울로 우첼로라든지 레오네 바티스타 알베르티, 도나텔로, 알브레히트 뒤러 등 수많은 화가들에 의해 연구되고 

발전되면서 그 후 수백년간 미술사를 지배하게 되는 것입니다.



알브레히트 뒤러의 저서 [측량법](1525)에 등장하는 삽화 - 작도원리를 실험하는 장면


자연을 모방하려는 인간의 열망...

다시말해 조금 더 잘그리려는 마음, 조금 더 실제와 같이 표현하려고 했던 인간의 바람과 열망은 인간이 처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이래로 16,500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후에야 비로서 실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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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우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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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잘읽었습니다.

    2015.04.19 18:1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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