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013.12.25 22:18



오늘이 크리스마스다~^^

그리스도의 탄생일이라는 기념일에서 이제는 커플들의 가장중요한 데이트날이 되어버렸다.

그도 그럴것이 전세계적인 축제날인 만큼 사람들의 마음이 들뜨는 것도 사실이고 한해를 마무리하는 시기라는 점에서도 흥분과 설렘의 적절한 감정선이 연인들... 그리고 연애를 하고싶은 사람들의 마음을 휘젖고 있는 것이다. 이런 변화의 추세가 크리스찬의 입장에서는 조금 못마땅하고 안타까움이 있겠지만 또 다르게 생각하면 기분좋은 하루~ 설렘과 행복가득함이 넘쳐나는 하루가 그리스도의 탄생일이 되는 만큼 꼭 나쁘게만 생각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아무튼 오늘은 크리스마스로 그리스도의 탄생을 표현한 그림을 살펴보겠다.

바로 카라바조의 아기예수 탄생이다.

많은 작품들이 그리스도의 탄생을 그리고 있지만 내가 카라바조의 그림을 택한 것은 카라바조가 내가 좋아하는 화가들 중 한명이기 때문이다.

타협을 모르는 굳은 신념의 화가였으며 대담하면서도 혁면적인 화가였다.

바로크시대까지만 하더라도 아직은 중세시대에 그려졌던 것처럼 성직자를 워엄있고 권위적이며 존경심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신성시 그리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카라바조는 그렇게 그리지 않은 것이다.

늙고 가난하며 투박스러운...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저씨의 모습으로 그린것이다.

그 대표적인 그림으로 성 마테오만 보더라도 성직자의 권위있고 위엄있는 신성스러운 느낌은 없다.

단순히 천사의 지시를 받아 그의 말을 일일이 받아 적는 어리숙한 늙은 아저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마치 선생님이 유치원생의 어린 아이의 손을 이끌어 작은 것 하나까지도 알려주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명화카라바조-성 마테오

성 마테오 / 1602년/  갠버스에 유채/ 232 x 183cm /  현재 소실



아무튼 그의 현실적이고 다른사람의 눈과 생각에 치우치지않는 신념을 좋아한다.

그래서 카라바조의 그림을 선택했다.

실제로는 이 아기예수 탄생보다는 카라바조의 같은 주제 또 다른 그림인 목자들의 경배를 더 좋아한다.

이 그림에는 신성스러움을 표현하는 어떠한 장치도 없는 너무 현실적이고 사실적인 표현이 되어있다.


명화카라바조-목자들의 경배

목자들의 경배/ 1608~9년/ 캔버스에 유채 / 314*211cm/ 레지오날 미술관, 메시나



어두컴컴하고 칙칙한 분위기의 마구간에 나귀들은 지금 무슨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관심도 없다.

마구간의 바닥은 너무나 사실적일 정도로 지저분하며 그 어두운 색채는 차가움마저 담고 있다.

아기예수를 안고 있는 마리아 그런 두사람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요셉, 그리고 마구간에서의 생명탄생이 

그저 신기하고 놀라운 목자들...

카라바조는 빛을 사용할 줄 아는 화가였다.

명암... 즉 밝고 어두운 대비를 이용해 극적인 표현에 능했던 것이다.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고 축하하는 천사도 없다, 광채도 없다.

하지만 이 그림에서 밝고 어두운 톤의 대비는 오롯이 아기예수탄생에 맞춰지고 있다.

아기예수를 제외한 다섯사람의 표정, 몸짓이 아기 예수의 탄생을 경이롭고 신성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명암을 이용해서 너무나 현실적인 순간을 신성하고 신비롭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느끼기에 조금 더 그리스도의 탄생다운 아기예수 탄생을 다루어 보겠다.



명화카라바조-아기예수 탄생

아기예수탄생/ 1609년 / 캔버스에 유체/ 팔레르모 산 로렌초 성당 (도난소실 ㅠㅠ)



목자들의 경배와 마찬가지로 어두컴컴하고 칙칙한 마구간에 인물들에게만 빛이 작용한다.

동방박사와 성모마리아 사이에 있는 소는 마구간과 마찬가지로 어둡고 흐릿하게 표현되어 있다.

마구간과 같은 배경에 속하는 것이다. 

여기서 소의 역할은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고 축하하는 역할이 아니라 지금 이곳이 마구간이다라는 것을 

알려주는 단순한 장치에 불과하다.

반면에 아기예수, 성모마리아, 요셉, 세명의 동방박사들 그리고 하늘에 천사의 역할은 아기예수탄생의 축하에 있다. 하늘에서 내려와 아기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천사는 이 순간을 더욱 더 신성스럽게 만들어 주고 있으며 성모마리아 뒷편에서 기도를 하고 있는 동방박사는 이 순간을 너무나 정중하고 엄숙하게 만들어 내고 있다.


눈에 거슬릴 정도로 몸을 돌려 동방박사를 바라보는 요셉은 이 순간이 의아스럽기만 하다.

쓸데 없이 갑작스럽게 시작된 호적등록 명령에 잠잘 곳도 없어 마구간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있는데 갑작스럽게 태어난 아기, 거기에 높은 사람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들어와서는 아기의 탄생을 축복하고 경배하고 있다.


충분히 당황스러울 것이고 의아스럽다.

카라바조는 이 요셉의 포즈와 시선처리로 인해 이 아기예수의 탄생이 그만큼 현실감 없는 신비롭고 신성스러운 일이다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 얼마나 멋스러운 표현인가?

단순히 그리스도의 탄생 순간을 화려하고 신성스럽게만 표현을 했던 중세시대나 이전 르네상스시대의 표현과는 

확실히 다른면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중세시대 그림들은 형태왜곡도 불사하고 신성스러움만 강조한 그림들이 넘처난다.

신성스러운 표현들이 나쁘다 안좋다는 것이 아니다. 

당연히 신성스러워야하며 화려해야되는 순간이다.

하지만 그런 부분에만 치우쳐있는 표현보다는 개인적으로 이런 느낌의 그림들을 좋아한다.

직접적인 표현보다는 숨겨진 더 큰 메세지들을 담고있는 그림들 말이다.

그래서 난 카라바조의 그림들이 좋다. 

현실적이지만 그런 현실감 속에서 누구도 쉽게 표현할 수 없는 무엇인가를 표현하고 있다.

이 아기예수의 탄생도 비록 천사라는 직접적인 신성스런 표현이 들어가 있지만 그것을 제외하면 너무나 현실적이다. 내가 어릴때 본 시골의 마구간 풍경과도 비슷하다.

이런 현실감 속에서 자연스러운 감동들이 밀려나온다.

눈부시게 화려한 스타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이야기 같아서 더 감동스러운 것이다.

정말 인간의 몸으로 와서 인간의 몸으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의 삶을 가감없이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오늘하루~ 사랑하는 연인들과 같이 보내면서... 그리고 또 사랑을 나누어주면서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준 사랑을 한번 생각해 봤으면 한다.

종교적인 의미로서가 아니라 정신적인 의미로서 말이다.



정말 메리 크리스마스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Posted by 나우즈라

댓글을 달아 주세요